코디 폰세 일본 야구에서 한국 온 이유 (통계, 팀, 이적 기록)

17일 SSG전에서 18K로 KBO 최다 탈삼진을 경신하게 된 코디 폰세 선수는 이전에 일본 프로야구 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를 떠나서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데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어서 여러분에게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코디 폰세 신인 시절

캘리포니아 출신의 우완 투수 코디 폰세(Cody Ponce)는 2015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25번째, 전체 55순위라는 높은 순위로 “밀워키 브루어스“에 지명 되었습니다. 이는 KBO로 치면 2라운드 8번째 지명, 전체 18순위 정도입니다.

마이너리그를 걸쳐 2019 피츠버그로 이적을 하였고, 2020년 처음 피츠버그 메이저리그 등판을 하였습니다. 단축시즌과 합쳐서 폰세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2시즌 동안 20경기 출장, 통산 1승 7패에 그쳤습니다. MLB 무대에서 기록한 55.1이닝 동안 48개의 삼진을 잡았으나 평균자책점은 5.86으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전체 55번이라는 유망주(전체 60번까지 미국에서는 유망주이다. 한국으로 치명 전체 20번째, 2라운드 10번까지 유망주이다.) 기대에 비해서 너무나 못 미치는 성적으로 결국 NPB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코디 폰세 일본 시절

2022년 니혼햄 파이터즈에 외국인 투수로 활약을 하며 3점대의 평균자책점으로 준수한 기록을 남겼고, 8월 27일 노히트노런 기록까지 세우며 성공한 용병으로 일본 프로야구에 기록을 남겼습니다.

라쿠텐 시절 코디 폰세
출처: 인스타그램 라쿠텐 시절 코디 폰세

그러나 이런 기록에도 MLB로 돌아가지 못했고, 결국 2024년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을 하였습니다. 니혼햄에 있던 기록에 비해서 6점대 평균자책점을 남기며 좋지 못한 기록을 보여줬고, 일본에서 방출 위기에 놓였습니다.

2025년 코디 폰세는 한화 이글스와 계약을 하며 한국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고, 지금은 한국이 너무 좋다고 이야기를 하며, 아내와 같이 한국에서 거주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한국에서 러닝 크루를 만들어서 소소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코디 폰세 한국 프로야구 온 이유

KBO리그가 많이 발전을 하였지만 NPB에 비하면 리그의 실력 차이가 있고, 메이저리그에서 대리고 가는 횟수, 인식 자체가 많이 다릅니다.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NPB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코디 폰세로 이런 점을 이용해서 NPB에서 도약을 하고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려고 했으나 일본 야구 문화, 일본 팀 문화 등에 어울리지 않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ERA 6점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어떤 문화가 있는지, 왜 한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아봅시다.

수직적인 일본 야구 문화

드라마나 영화로 접해서 알고 있듯이 일본의 조직 문화는 매우 수직적입니다. 그리고 사사로운 규칙, 예절이 너무 많죠. 예를 들면 도장을 찍을 때 아래 사람은 높은 사람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듯 기울여서 찍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일본 도장 문화이다.
일본 도장 문화이다.

일본 야구 문화에서도 수직적인 문화로 인해 외국인 선수가 환호하고, 공격적인 세레머니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코디 폰세 와이프는 인터뷰에서 “일본 야구팀에 있을 때는 같은 팀이 아니라 용병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선발 경기가 아니면 같이 관중석에서 관람을 할 정도였다“라고 말 하였습니다.

한화 이글스 선수 모으는 코디 폰세
한화 이글스 선수 모으는 코디 폰세

만약 코디 폰세가 한화 이글스 경기 중에 야수들을 모아서 조언을 해주는 위 장면을 일본 야구에서 했을 어떻게 되었을까요? 외국인 용병인 예의가 없다고 바로 방출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최강야구에 나오는 이대은 투수도 마이너리그에서 생활하다가 일본 야구로 가게 되었을 때 “한국인이 왜 이렇게 예의가 없고 자유 분방하다고” 욕을 먹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코디 폰세

한국은 비교적으로 외국인의 자유 분방함을 존중하는 국가입니다. 코디 폰세가 야수들을 모아서 간담화를 하였을 때도 그 누구도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코디 폰세도 한국에서 매우 잘 적응하고 있으며 한화 팀에 있는 것이 기쁘고 대우 받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코디 폰세는 포수 최재훈과 가장 친하며 멘탈적인 부분에서 많은 케어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론

코디 폰세가 일본을 떠나 KBO 무대에 선 것은 단순한 이적이 아니라, 야구 인생의 방향을 바꾼 중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MLB 유망주 → 일본 NPB 노히트노런 → 라쿠텐 ERA 6점대 부진 → 방출 위기, 그 뒤 선택한 한국행은 커리어보다 ‘존중받는 삶’과 야구 본질에 가까워지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 용병이라는 이유만으로 팀 문화에서 소외되고, 수직적인 야구 조직문화와 복잡한 예절 규범 속에 제대로 숨 쉴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폰세의 아내는 “같은 팀이 아니라 용병처럼 느껴졌다”고 밝히며, 외국인 선수에 대한 차별적 분위기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달랐습니다. 한화 이글스 외국인 투수로 새롭게 합류한 코디 폰세는 팀 동료들과 소통하고, 조언하며, 마운드 위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났습니다. 최재훈과의 배터리 호흡도 그의 적응을 도왔고, 아내 역시 한국에서 러닝 크루를 운영하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적응’을 넘어 KBO 외국인 용병의 긍정적인 사례로 기록될 만합니다. 일본에서 고개를 떨구던 선수가 한국에서 진정한 팀워크와 야구의 재미, 사람다운 대우를 받으며 부활한 것입니다.

분류키워드설명
경력 출발밀워키 브루어스, 피츠버그MLB 신인 시절과 이적 경로
일본 시절니혼햄, 라쿠텐, 노히트노런NPB 활약과 부진, 문화 적응 실패
문화적 차이수직 문화, 예절, 외국인 소외감일본과 한국 야구 문화 비교
KBO 적응한화 이글스, 최재훈, 자유로운 분위기긍정적 적응 사례 및 관계성
사생활와이프 러닝 크루, 한국 생활 만족한국에서의 정착과 커뮤니티 활동

코디 폰세는 왜 일본에서 방출됐나요?

2024년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6점대 ERA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고, 일본 야구 특유의 수직 문화와 외국인 소외 분위기에도 적응하지 못해 방출 위기에 놓였습니다.

코디 폰세는 일본에서 어떤 활약을 했나요?

니혼햄 파이터즈 시절인 2022년에는 3점대 평균자책점과 노히트노런 기록도 달성했지만, MLB 복귀에는 실패했습니다. 그 이후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부진한 성적을 기록 했습니다.

왜 한국으로 오게 되었나요?

일본에서 외국인 선수로서의 차별과 문화적 괴리감을 느꼈고, 새로운 기회를 위해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KBO리그를 선택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적응하고 있나요?

한화 이글스 팀 분위기, 팬들의 응원, 포수 최재훈과의 유대, 그리고 가족의 정착까지 모두 성공적으로 진행되며 매우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